2025.08.2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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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21년 정충신의 보고에 실린 누르하치의 아들, 가문내(加文乃)는 누구?
1621년 8~9월 만포첨사 정충신(鄭忠信)은 광해군과 조정의 지시에 따라 후금에 파견되어 적정 탐지 및 외교...
1600년 노토(lotun, 老土) 부락 정토 당시의 로툰측 피해/조선군 전과에 대해
로툰(lotun, 노토老土)는 선조 시기 동량북(東良北, dorgi bira)에 세거하면서 두만강 유역 번호들 중 강한...
1600년 노토(lotun, 老土) 부락 정토 당시 투입된 조선군의 규모
『요동지(遼東志)』 기술 명대(明代) 중기 광녕(廣寧) 방면의 군적상 명군 배치 병력
『요동지(遼東志)』는 정통(正統) 8년(1443)에 도지휘첨사 필공(畢恭)에 의해 처음으로 수찬되고 이후 세 ...
『요동지(遼東志)』 기술 명대(明代) 중기 금주(錦州), 의주(義州) 방면의 군적상 명군 배치 병력
『요동지(遼東志)』 기술 명대(明代) 중기 전둔, 영원 방면의 군적상 명군 배치 병력
『요동지(遼東志)』 기술 명대 중기 요동 25위의 호적상 호구와 군적상 요동의 명군 병력수
탈주자 백운룡(白雲龍) : 1618년 요동 전장에서 도주한 한 명군 장수의 운명
백운룡(白雲龍)이라는 장수는 17세기 초엽 요동에서 근무하던 수 많은 명군 장령 중 한 사람이었다. 그의 ...
1618년 5월 후금의 2차 대명공격 당시 후금의 명 경계 재진입 시점의 충돌에 대한 단상
1618년 5월 17일 (음), 후금의 한 누르하치(nurhaci)는 2달여만에 다시 명의 영토를 향해 군대를 이끌고 출...
1618년 후금-명 전쟁 시작 이후, 후금의 최초 대명 서신 발송 시점
1618년 4월 13일(음), 누르하치는 칠대한(七大恨)의 명분을 내세워 명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. 2만의 군...